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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만화 그리고 썰이네요.

 
고양이 가지고 두발 단속 소재로 만화를 그리려다 보니 얘네는 머리털 자르는 일은 거의 없고 몸을 홀라당 벗겨버리는 일이 많으니...

1. 라운더바우트 - 와타나베 페코

 
와타나베 페코 지음 / 레이디브런치코믹스(이름 참...) / 대원씨아이

얼마 전에 만화가게에서 슬쩍 읽어보다가 어머 이건 사야해 하면서 한 에피소드만 읽어보고 바로 덮어버린 다음 서점에 가서 구입한 만화책. 노무라 마코토라는 중2 여학생이 주인공인 학생물이다. 썩은 만화만 많이 보다보면 중2 여자애라면 뽁찡에 환장하거나 인류 멸망을 기도하고 악마에게 혼을 팔거나 이상한 트라이브에 가입해서 살인게임을 즐기거나 약빨면서 살거나 동인지 그리며 하악거리거나 그런 상상을 많이 하게 마련인데 이 만화에 나오는 애들은 그런 거 전혀 없다. 그렇다고 어디 여성가좆부에서 뒤 봐준 만화마냥 말랑말랑한 내용만 있는 건 아니다. AV 몰래 보기, 등교 거부, 이성교제 등 그 나이 또래 애들이 가질만한 번뇌와 실천은 나름 다 나오는데 그럴듯하게 풋풋하다. 쪽팔려서 말은 안 해서 그렇지 사실 성장기에 이런 시절 보낸 사람들이 대부분일 터...

만화 핥는 소리는 적당히 하고 이 만화를 보다가 눈에 밟힌 번역이 하나. 표지에 기묘한 자세를 취하며 그려져 있는 소녀가 주인공인 노무라 마코토인데 얘가 돈 좀 아낀다고 미장원 안 가고 자기 친언니한테 머리를 맡겼다가 머리가 바가지 머리가 되어 버린다. 친언니가 자기가 그렇게 만들어 놓고 절규하는 대사가 명작인데 "마코토가 호섭이가 됐다-"라며 외치는 것이다.

호섭이 머리 = 바가지 머리라는 공식은 당연히 호섭이라는 드라마 캐릭터에 대해 공감할 수 있는 사람들에게는 간단명료하며 알기 쉬운 이야기이다. 호섭이는 1989년 MBC 주말 드라마 <행복한 여자>에 등장했던 바보 캐릭터의 이름인데 당시 연기자이던 문용민씨가 좀 더 바보스러운 역할 연기를 위해 고민하다가 미용사인 아내에게 머리를 만져달라고 했는데 바가지를 얹고 주변을 쳐낸 듯한(정확히는 바가지보다 냉면사발을 얹어야 이 모양새가 나온다고 한다.) 머리 모양을 만들고 이거 아무래도 너무 바보같다며 후회가 막심했지만 당시 감독은 매우 좋아했고 이로 인해 <여로>의 영구에 이어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바보 캐릭터 호섭이가 탄생했다고 한다.(Link)

그런데 이게 마냥 좋기만 한 건 아니어서 연기자 자신도 한동안 실제 생활에서도 바보 취급을 받거나 무시를 당하며 살아야 했다고 한다. 이거 진짜 인간들 좆같은 습성이다. 바보 연기를 했다고 사람 자체를 바보로 본다니 무슨 마인드인지 원.

게다가 호섭이라는 캐릭터 이름도 문제였다. 혹시 이 글을 읽는 사람 중 호섭이란 이름을 가지고 1980년대 말을 살았던 사람이라면 알겠지만 이름이 호섭이란 이유 만으로 덩달아 바보 취급을 받아야 했던 사람이 한둘이 아니다. 이런 건 드라마나 영화에 무슨 이름이 나올 때마다 흔히 발생하는 현상이지만 호섭이는 유독 그 정도가 심했다.

1989년엔 내가 중1이었는데 당시 우리 반에도 호섭이란 애가 하나 있었다. 당연히 놀림감이 되...기엔 걔는 힘이 좀 셌고 싸움을 잘 했다. 그래서 아무도 그 아이를 놀리지 않았는데 문제는 선생들이었다. 수업에 들어온 선생들이 꼭 뭐 하나 시킬 때마다 호섭이를 들먹이며 쓰잘데기없는 농담을 걸며 애를 놀렸고 앞에 나와서 뭐 풀어보라고 시켜서 풀면 어이구 우리 바보 호섭이 이런 것도 잘 푸네 이러고 못 풀면 역시 호섭인 바보구나 이러고.
애들은 안 웃으려고 노력했지만 만약 한 명이라도 웃었다간 그 수업 다음 쉬는 시간에 선생이 나가고 난 다음 바로 의자가 날아가고 책상이 넘어지는 피바다가 벌어졌다. 

일찌기 도라에몽의 작가 후지타 후지오 선생즈는 이런 사태를 대비하여 도라에몽에 나오는 뚱띵이 여자애의 본명을 연재 끝날 때까지 공개하지 않았다. 만약 어떤 이름이라도 그 여자애 이름을 만화 내에 공개할 경우 그 이름과 비슷한 이름을 가진 여자애가 놀림감이 될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 판단은 옳았다.

그래서 일본 AV 여배우 중에는 비슷한 이름을 가진 여자의 고소나 문제 발생을 막기 위해 실제 사람 이름으로 쓰지 않는 이름(가장 대표적인 건 역시 @You... 이게 대체 무슨 이름이야)이나 지역 이름(난바 안, 카나자와 분코 등)을 쓰는 경우가 있...나? 이건 좀 다른 이야기일지도.

다시 호섭이 머리 이야기로 돌아오자면, 바가지 머리를 호섭이 머리라 부르는 건 같은 시대를 살았던 사람에게는 이해하기 쉬운 번역이겠지만 이 만화가 가진 장래성(먼 훗날 이 만화를 읽을 사람도 있을 것이다)이나 나이 어린 독자를 생각해 본다면 잘못된 번역이라 할 수 있다. 그냥 바가지 머리 정도로만 번역해도 충분했을텐데 번역자나 편집책임자 모두 30대 정도여서 호섭이 머리라는 표현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인 듯 하다.

자기가 알고 있고 자기 주변 사람들이 알고 있으며 널리 쓰이는 말이라도 객관적 입장이 필요한 책이나 문서에서는 사용하지 않아야 하는 이유를 항상 마음에 간직하아앙

만약 시류를 반영하는 표현이 많은 문장을 나타내야 할 경우라면 충분한 사전 설명이나 주석이 함께 해야 하아앙

아 배고파. 양꼬치 먹으러 나가야지.

niMishel 111016 1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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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niMishel